다사다난했던 유년시절
“어렸을 적부터 금속 공예와 관련된 것에 관 심이 많았어요. 화강암에 대못으로 글씨를 판 경험이 있을 정도로 조형예술에 관심이 많았죠” 라며 인터뷰를 시작한 한상대 동문(금속공예과 83학번). 그는 초·중·고 유년시절을 익산에 서 보낸 익산 토박이다.
“학창시절 예체능계열 분야에 흥미를 느끼곤 했어요. 그 중에서 태권도를 고등학교 때까지 계 속해체대를지망했을정도였으니까요. 그러나운 동 중 무릎을 크게 다쳐 그만두게 됐어요. 1년 동 안병석에누워있을정도로큰부상이었답니다”. 한 동문은 부상 후 운동을 못하게 되자 어렸을 적부터 관심이 많았던 예능계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. 운동을 하던 학생이 입시 공부를 하려니 많이 힘들었다고. 그러나 부단히 노력한 덕에 1981년도에전문대공예과에입학하게된다.
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랑의 스승님
군산서예공업전문램 슬롯교 공예과에 입학하게 된 한 동문은 인생의 롤 모델인 윤여옥 교수님 을 만나게 된다. “윤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제 운명이라 생 각해요. 교수님이 현재의 저를 만들어 주신 거 나 다름없어요(하하).
그는 윤 교수의 지도하에 많이 배우고 성장하 게 된다. 전문대학을 다니던 중 윤 교수가 슬롯사이트대 학교 교수로 역임하게 되면서 한 동문은 슬롯사이트대 학교 금속공예과로 재입학하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. 당시 편입이 안됐던 시절인 탓에 그는 전문 대를졸업하고다시입시시험을치른후에1983 년우리대학금속공예과에입학할수있었다. “슬롯사이트에 입학했을 때 제 나이가 24살 이었어요. 독립군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혼 자 조용히 공예에만 매달렸죠. 학점보다는 제 전공을 살리는 일에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 릴 정도였다니까요”.
우리나라 최고의 명장이 되기까지
“서울로상경해많은고생을했어요. 밥을굶는 것은 다반사였죠. 그래도 장인이 된다는 생각 하 나로 지금까지 달려왔어요. 돌아보니 마음이 참 아파요,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… 고 생한경험은말로도다표현못할것같습니다”.
그는 램 슬롯교 졸업 후 무일푼으로 서울로 상경 해 전통공예의 맥을 잇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. 램 슬롯교를 졸업한 사람이 기술을 배우러 왔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기술자들에게도 많은 괴롭힘을 받았다고. 소위‘왕따’라 불릴 정도였 다. 하지만 그는 놀림과 괴롭힘에 연연해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을 연마하고 세공하는 작업에 만 몰두했다. 20여 년을 여러 차례 공모전에서 수상도 하 고 심사위원도 해 보는 등 전통공예 예술가의 길을 걷던 그에게 지난 2월 25일은 잊을 수 없 는 인생 최고의 날이 된다. 바로 우리나라 국새 의‘인뉴’(도장의 꼭지나 손잡이) 장인으로 선 정 된 것이다.
램 슬롯교수, 인간문화재 등 우리나 라 쟁쟁한 실력가들이 대거 공모한 5대 국새 디 자인 공모전에서, 이들을 제치고 무명인에 가까 웠던 그가 당선되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. “그동안 이론과 실기를 꾸준히 겸비해 온 결 과라고 생각해요. 처음 공모했을 당시만 해도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정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. 4대 국새가 가짜로 밝혀지면 서 문제가 많아 이번에는 이름을 전부 가린 채 예술성과 작품성으로 심사를 했는데 아마 그 덕 에 장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”.
최종 꿈과 후배들을 위한 한마디
“전통공예 뿌리를 찾아 발전시키기 위해 꾸 준히 노력할 예정이에요. 얼마 전 전북 무주 전 통공예테마파크로 작업실을 옮겨 작업을 하고 있어요. 내년쯤 국새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답니다”.
그의 또 하나 목표는 램 슬롯 강단에서 장인정신 이 투철하고 끈기 있는 인재를 발굴 양성해서 전통공예발전에 기여하고 싶단다. 후배들을 위한 한마디를 묻자“후배들을 보 면 많이 안타까워요. 고등학교 때까지만 공부하 고 막상 램 슬롯에 와서는 놀아버리는 경우가 많거 든요. 지금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말고 지 금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단히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.

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높은 곳을 바라보되 항상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성공 할수 있어요. 목표를 정했을 땐 밤낮가리지 않 고 철두철미하게 실행했으면 좋겠어요”라고 후 배들에게 조언한다. 또한“단기전엔 강하게, 장기전엔 끈기 있게 더 강해야 합니다”라는 말도 덧붙였다. 그의 인생 최종목표는 사단법인 국새 보존연 구원을설립해우리나라5대국새의주제인봉황 을 응용해 발전적이고 다양한 국새디자인을 기 획하여한국적인전통의맥을되살리는것이다. 한국에서 당대 최고의 장인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를 획득하게 된 한 동문. 우리나라 5대 국새 장인이 된 그에게서 전통공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. 앞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를 주목해 보자.
이혜민 기자 leehm9@wku.ac.kr